파스칼의 팡세, 인간 이성의 위대함과 종교
파스칼의 팡세 : 인간 이성의 위대함과 종교
저자 블레즈 파스칼은 클레르몽페랑 지방의 세무공무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아들이 수학에 두각을 나타내자 이를 빨리 알아차렸습니다. 파스칼은 유클리드의 32번째 명제를 고찰하고, 11세에는 소리에 관한 논문을 쓸 정도로 재능이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문제에서 재능을 발하면서 그렇게 그는 수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듯 하였으나, 23세 이후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그는 종교상의 고찰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찰의 결과로 적게 된 것이 “팡세”입니다.
그러나 파스칼이 요절한 탓에 팡세는 그의 사후에 미완성인 채로 출판되었습니다. 신학적 성격과 철학적 성격을 함께 띄며 종교계에서 유명한 저서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에서 가장 연약한 한 개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부러뜨리기 위해서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방울의 수증기, 한 방울의 물로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부러뜨릴 경우라 할지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우주보다도 훨씬 더 고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지만, 인간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위대하다고 파스칼은 말합니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넓은 우주에 아무런 영항도 미칠 수 없는 하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지요. 그는 그렇게 인간을 갈대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파스칼의 비유에서 갈대의 유연성과 특수성 또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단지 갈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스스로의 처지를 인지하면서 우리는 의미없는 존재에서 벗어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무한함은 인간을 형이상학적 두려움으로 가득 채웁니다. 우주의 광대한 공허에 비해 인간은 여전히 연약하고 나약하다고 파스칼은 말하지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실존적 절망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는 하나님, 종교를 그 해답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파스칼은, 이에 관해 유명한 내기를 제안합니다. 사람들이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이에 신앙을 가진다면, 사람들은 천국에 가게 되겠지요. 하지만 신이 존재함에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아무런 손해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을 가지는 경우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득이 되지요. 이것이 파스칼의 내기입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 외에도 여러 주제를 강조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타락에 있음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간은 자신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말하지요. 그렇기에 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위대하며 자랑스러워 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지요.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파스칼의 관점은 책 전반에서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사용됩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설명하며 카톨릭의 타락을 비판하기도 하고, 기독교의 교리와 신자와 불신자,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기적, 문헌 등 종교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 또한 다룹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쾌락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인간은 때로는 쾌락주의에 빠져듭니다. 쾌락주의는 우리를 현실의 부조리함에서 구해주지는 않지만, 욕망, 질병, 부조리로부터 자유로운 세계가 존재함을 믿지 않는 이상 훌륭한 도피처입니다. 우리는 쾌락주의에서 벗어나야만 할까요? 아니면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 이를 즐겨도 괜찮을까요?
파스칼은 이러한 생각에 비관적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삶을 즐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즐기는 것들은 결국 헛된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젋음과 같은 쓸데없는 희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헛된 명예, 부, 권력의 야망 등 여러 유혹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유혹들은 우리를 즐겁게 하고 때때로는 그 어떤 달콤한 음식들과 술보다도 우리를 더욱 취하게 하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 속에서 삶의 목적을 잃고 명료함을 잃는다면,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이러한 삶을 거부해야 하는 것은 거창한 교만 때문이 아니라 헛된 노력으로 삶을 낭비하는 것을 거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오락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오락이 나에게 복종하도록 해야 합니다.
팡세는 종교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지만, 인간 이성과 자아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설명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의 모든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이 보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블레즈 파스칼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을 통해서 기독교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파스칼은 인류를 하나님을 경배하며 구원과 행복을 구해야만 하는 비참한 피조물이라고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끝내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후대 사람들에게 영원한 미완성 고전인 팡세를 고뇌 끝에 써내려가지요. 팡세는 종교에 대한 책이지만, 인간 이성과 가치, 자아와 삶의 태도에 관한 지침을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생각하는 갈대. 얼마나 멋진 말인가요. 어려운 책이지만 삶에 있어서 여러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었습니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몇몇 의문점들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먼저 파스칼의 내기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파스칼의 가정처럼 신이 하나님 단 한 분만 존재한다면 내기가 성립하겠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종교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수많은 신을 모시는 각각의 종교에 대해 같은 내기가 성립한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파스칼의 말처럼 이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결국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비참한 상태 때문에 본질적인 행복에 접근할 수 없음을 설명하였지만, 그러한 두려움과 비참함 속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분명 종교 이외에도 다른 답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참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by Lindin -